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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보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by 돈많은생각 2023. 7. 8.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출생-사망: 1857-1929

국적: 미국

모교: 킬튼 대학교

기여: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사진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베블런의 생애

베블런은 1857년에 노르웨이계 미국인 이민자 부모인 토마스 베블런과 카리 분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블런의 부모님은 이주민이었지만 미국에서 농장을 설립하여 번창하였고 베블런에게 정규 교육을 제공하여 베블런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습니다.

 

1874년에 베블런은 칼튼 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때 교수가 존 베이츠 클라츠였는데, 베블런은 클라츠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경제학의 본질과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880년에는 칼튼 대학을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예일 대학교로 옮겨 장학금을 받으면서 철학을 전공으로 하면서 칸트 철학을 배웠으며, 사회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였습니다.

 

베블런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장기간 실업 상태였다가 1892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펠로우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경제학회지에서 편집자로 저술활동을 했으며, 활동 당시에 1899년에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였습니다. 그가 주목받은 이론과는 별개로 시카고에 있는 베블런의 학생들은 그의 가르침이 지루하고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베블런은 괴팍한 성격과 바람둥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조롱을 받고 시카고 대학에서 사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도 같은 이유로 사임했습니다.

 

1911년에 미주리 대학의 경제학 부장이었던 친구의 도움으로 베블런은 1911년에 그곳에서 시간강사로 취직하였는데 미블런은 시간강사라는 것이 못마땅하고 미주리란 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기도 하였지만 미주리에 체류할 당시에 그는 <작품의 본능과 산업 예술의 상태>를 출판하였습니다.

 

그 이후 1917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위임된 그룹과 일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이동하였고, 이때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대한 연구>(1917)로 자본주의가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베블런은 칼튼 대학에 있는 동안 총장의 조카인 엘렌 롤프를 만나 1888년에 결혼하였으니, 엘렌 롤프와는 1911년에 결국 이혼하였습니다. 이혼 사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엘렌 롤프가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후 베블런은 1914년도에 앤과 재혼하였고 앤과 두 딸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베블런은 본인의 아이는 없었으며 1920년에 아내 앤의 죽음 이후에 의붓딸과 1929년에 베블런이 사망할 때까지 잘 지냈다고 합니다.

 

베블런의 경제학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한 유한계급은 여가를 즐기는 계층, 과소비를 하는 계층을 말하는데, 이들은 경제적 행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 사회적 지위와 눈에 띄는 소비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사회의 개인들이 그들의 물질적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소비에 참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블런에 따르면 부유한 엘리트들로 구성된 여가 계층은 주로 기능적인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를 뽐내기 위해 사치품,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 그리고 여가 활동에 돈을 씁니다. 베블런은 이러한 행동을 개인이 부와 우월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 서로를 능가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경쟁의 한 형태로 보았습니다.

 

베블런은 또한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개인들이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얻기 위해 여가 계층의 소비 패턴을 모방하는 "재정적 에뮬레이션"의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들 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소비 관행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이 모방은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는 소비와 낭비의 순환을 이끈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 말고도 기술과 제도 모두 경제를 형성하는데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는 기술 발전과 산업화가 경제 시스템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술과 관련하여 베블런은 혁신적인 힘과 생산 공정에 가져온 변화를 인식했습니다. 그는 기술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가시켜 경제 성장과 부의 축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주도 생산의 결과를 비판했습니다.

 

베블런은 기술 발전이 생산 수단을 통제하고 이익을 얻는 사람들(자본가 계급)과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고 믿었습니다. 베블런은 이것을 진정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이익 추구와 눈에 띄는 소비로 초점이 옮겨가는 생산적인 과정의 왜곡으로 보았습니다.

 

제도 측면에서 베블런은 경제적 행동과 결과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관습, 전통, 사회 규범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제도가 경제적 결정과 패턴을 형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고착된 제도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영구화하고 더 공평하고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믿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기술과 제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베블런의 견해는 경제 시스템, 사회 구조 및 문화 규범 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기술 발전과 제도적 합의가 어떻게 경제적 행동을 형성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기여하는지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베블런의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고 경제생활을 형성하는 데 사회적 지위와 눈에 띄는 소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경제 행동의 사회적, 심리적 차원을 조명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경제, 사회, 그리고 인간의 동기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는 학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