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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by 돈많은생각 2023. 7. 1.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출생-사망: 1723-1790

국적: 영국

모교: 글래스고 대학교

기여: 자본주의의 개념 정립

애덤 스미스(adam smith) 사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애덤 스미스의 생애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이자 철학자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또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글래스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공부하였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생활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고 중도퇴학하여 스코틀랜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또한 그는 1759년에 스스로의 명성을 떨친 ‘도덕감정론’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1764년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유럽여행을 시작하였고 중농주의 사상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들의 사상과 이론을 흡수하였습니다. 귀국 후 1776년 유명한 ‘국부론’을 발표하여 국가가 자유 경쟁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애덤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대학 총장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자기의 행동이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자기를 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기 행동을 시인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사회적인 행위의 규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도덕적 감정을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타인과의 공감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으며, 이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행동을 지배한 주요한 원리라고 말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사이의 모순을 이야기합니다. 도덕감정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상호 간의 공감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자본주의에 의해 자기 이익에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애덤 스미스를 연구한 학자들은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도덕감정론에서 타인이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양립할 수 없는 견해를 제시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다른 측면을 관찰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론

애덤 스미스는 모든 부가가치는 노동 일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마르크스와 달리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에서 1776년에 '국부론'을 발표하고 노동이 부의 원천이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이야말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새로운 경제 이론을 내세우고 자본주의 경제를 이론화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부정하고, 또한 중농주의를 한 걸음 진행시켜 부의 원천이 되는 것은 농업이나 상공업에서의 노동가치설을 주장했습니다. 노동가치론은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며, 분업 등에 의해 그 생산능률을 높임으로써 그에 따른 효과를 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노동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설비투자나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자유주의 경제사상이라고도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처럼 경제 정책에서는 국가의 규제와 개입을 배제하고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각자의 이기심 추구에 맡기면 시장 경쟁이 경제질서를 파괴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가 보호하거나 개입해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수요 공급과의 관계에 따라 가격이 자동으로 결정되는 시장 원리)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에 따라 가격은 늘 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 술집의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이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설로 인해 영국 산업혁명의 중상주의에 따른 보호무역 정책은 재검토되고, 국부론이 이론적 지주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경제사상의 역사에 있어서는 근대 경제학의 기초가 되는 고전파 경제학을 체계화하여 ‘고전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19세기 리카드 등에 의해 더욱 발전해 30년대 이후 영국의 자유무역주의 정책에 도입되어 영국 자본주의의 번영을 이론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케인즈 경제학으로의 변화

애덤 스미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은 선진제국에 의한 식민지와 세력권 경쟁에서 제국주의로 전환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이론과 엄격히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자본주의의 무제한 경쟁이 세계공황이라는 경제 불안을 낳았기 때문에 고전파 경제학의 자유 방임주의를 국가의 개입·규제에 의한 고용 정책이나 사회 복지 등에 의해 수정하는 케인즈 학파가 유력해져 뉴딜 정책과 추후에 영국 노동당의 복지 정책이 주류가 되었습니다.